나의 자동차 이야기 - 벤츠 SLK 55 AMG 시승기

2013. 4. 19. 08:59기타/내가 쓴 글들 (from yahoo blog)

포르쉐 911과 박스터 시승의 감동이 약간 남아 있는 상태에서, 벤츠 SLK 55 AMG 시승을 하였다. 직접 보니 상당히 스타일이 좋았는데, 밋밋한 박스터보다는 쌔끈한 맛이 있는 편이었다. 포르쉐보다는 차가 높아서인지 타고 내리는데 불편함도 덜했다. 시동을 걸고 하드탑부터 오픈하고 슬슬 출발을 했다. E클래스는 좌/우 깜빡이가 왼쪽 아래에 있고 왼쪽 위에는 크루즈컨트롤이 있는데, 이번에 시승한 SLK에는 왼쪽 위에 좌/우 깜빡이 레버가 있고 왼쪽 아래에 크루즈컨트롤이 있어서 초반에 헷갈렸다. 미국 법규에 맞춰서 최근에 모든 차종이 이렇게 바뀌었다고 한다. 하긴, E클래스를 타다가 오피러스를 몰 때마다 좌/우 깜빡이 위치가 틀려서 매번 어색하기는 했었다.



시승 코스가 별로 좋지 않아서 마음 껏 달려볼 수 없는 채로, AMG의 맛을 느껴보려 애를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911은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정제되지 않은 엔진 소리로 차량 안팎을 휘저어버리는데, SLK 55 AMG는 일상 주행 시에는 벤츠 특유의 조용하고 안락한 승차감을 보여주다가 급격하게 엑셀을 밟으면 그때서야 비로소 자연흡기 엔진의 정제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그 정제된 사운드라는 것도 너무 얌전해서 감동을 받기보다는 "아, 그런가보다"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AMG 모델 중에 유일하게 SLK 55 AMG만 자연흡기 방식의 엔진을 사용하기 떄문에 터보엔진에 비해서 무겁고 자연스러운 엔진소리를 들려준다고 한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급격한 드라이빙을 할 때 이외에는 AMG 특유의 엔진 사운드는 거의 듣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차라리 911처럼 시종일관 떠들어대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일전의 포르쉐는 차를 모는 순간 "즐겁다", "재미있다"라는 느낌이 팍팍 와닿았는데, SLK 55 AMG는 마치 E클래스를 모는 것처럼 지나치게 안락한 느낌에 그저 "심심"할 뿐이었다. 방지턱을 넘는 순간, 이 차도 결국엔 벤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오픈탑 2인승 경량 로드스터가 방지턱을 스무스하게 넘는 모습이라니... 전혀 상상을 하지 못했다. 포르쉐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하드한 승차감과 요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하체를 가지고 있어서 계속 긴장을 하고 드라이빙을 해야했는데, SLK 55 AMG는 너무나도 안락하게 긴장감 없이 시승을 하고말았다.

반신반의하던 포르쉐 딜러분의 "벤츠 SLK는 E클래스의 승차감과 동일하다"라는 말이 증명된 것이다.


지난번 포르쉐 시승 때도 그랬지만, 본인이 둔감해서인지 "버킷" 시트의 장점을 아직까지는 직접 체감하지 못했다. 고속 주행이나 제대로 된 코너링을 경험해보지 못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짧은 시승에서는 버킷 시트의 어떤 부분이 좋은지는 알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또한, 탑이 오픈되어 오픈 에어링을 즐기는 것도 솔직히 아직까지는 제 맛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이번 포르쉐 박스터 그리고 벤츠 SLK 시승 시에 일부러 처음부터 끝까지 탑을 오픈한 상태로 시승을 해보았지만 기대만큼의 대단한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 성능이나 급제동 시의 안정감은 포르쉐의 그것보다 떨어지는 느낌이다. 포르쉐의 경우 엔진이 앞에 없어서 급 브레이크를 밟아도 앞으로 쏠림이 전혀 없이 제동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브레이킹 시에 느낌이 포르쉐에 비해서 다소 불안해서 가속하는 것이 신경쓰이는 편이었다. 

전반적인 차의 성능이나 스타일은 나쁘지 않았는데, 벤츠 동호회의 어떤 분 말씀처럼 "일억씩이나 되는 차가 이 정도의 성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SLK 55 AMG는 CLS나 다른 쿠페 모델처럼 일상 주행+스포츠 드라이빙을 목적으로 구입하면 적당할 것 같다. 즉, 가끔씩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는 "세컨드카"라기보다는 평소에 출퇴근용을 겸하는 "데일리 스포츠 스타일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그런면에서는 911과 비슷한 느낌이다) 앞서 포르쉐 시승 시에도 느꼈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그나마 주말용 로드스터로는 "박스터"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이 난다. 그런데 이번 SLK 시승을 하고 나니 1억 이상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는 오픈탑 2인승 경량 로드스터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게 되면서 급격히 흥미가 떨어져버렸다. 박스터나 SLK나 모두 좋은 차이긴 한데 그 정도 가격에 그런 정도의 성능이나 가치가 없으면 안되는 것이 당연하고, 내가 원하는 주말용 펀 드라이빙을 즐기는 용도에는 다소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차를 한대만 몰고다녀야 하는 상황이라면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ONLY 즐기는 용도의 차가 되어야 한다)


유명한 자동차 저널리스트이자 본인의 고등학교 동창인 까남이 "미니 로드스터"를 선택하게 된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간의 추상적으로 가지고 있던 환상을 모두 버리고 실질적으로 내가 원하는 드라이빙 스타일에 맞는 로드스터에 대해서 다시 고민을 시작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