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12. 18:14ㆍ기타/내가 쓴 글들 (from yahoo blog)
경량 로드스터의 선택에 있어서 SLK와 박스터 사이에서 여전히 무한반복되는 고민을 안고 있다가, 퇴근길에 서초 포르쉐 매장에 들러서 박스터 시승 예약을 했었다. 시승하기로 한 날, 박스터 뿐만 아니라 노란색 외장과 빨간색 내장을 가진 911 카레라S(!!)가 같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둘 사이의 성격 차이를 직접 느껴보라는 딜러분의 배려이기는 하지만, 이미 한번 911 시승 기회를 일부러 외면했던 본인으로써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포르쉐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고자 그간 911을 일부러 멀리해왔건만...
먼저 911을 시승해보기로 하고, 노란색 안전벨트를 메고 사이드미러와 백미러 위치를 조종한 다음 키를 꼽고 시동을 걸었다. 아뿔싸...
"으르르르르르르르르르렁~"
차의 시동을 켠 채, 잠시 엔진 소리에 넋을 잃고 말았다. 소리만 가지고도 감동 그 자체였다. 정녕 이것이 "정숙성"을 강조하는 차량에서는 일부러 들리지 않게 만드는 그 엔진소리였단 말인가. 기어를 D에 맞추고 엑셀을 밟으니 911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가 도로에 들어서고 엑셀을 밟아대기 시작하자, 911은 더욱 으르렁 대기 시작했고 다른 차들 뿐만 아니라 운전을 하는 나 자신 조차도 위축되게 만들어버렸다. 하드하면서도 적절한 승차감은 과연 데일리 스포츠카로 손색이 없었고, 계기판에서는 오로지 속도계밖에 보이지 않았다. 디폴트 세팅 자체도 마음에 들었는데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전환을 하면 발끝의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섬세한 드라이빙이 가능했다.
시승 구간이 시내라서 과감한 시승은 불가능했지만, 충분히 911이 어떤 차인지를 알고도 남는 시승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브레이크를 급격하게 밟아도 엔진이 앞쪽에 없기 때문에 앞으로 쏠리는 현상 따위는 전혀 없었다. 강력하게 제동이 되는 브레이크의 위력을 실감하니 가속을 함에 있어서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 이런 괴물 같은...
개인적으로 중요시 하는 요소가 "코너링"인 만큼, 어떤 차를 시승하던지 반드시 해보는 테스트가 엑셀을 강하게 밟으면서 하는 급격한 유턴이다. 그런데, 이 괴물은 아무런 요동도 없이 스무스하게 급격한 유턴을 해내는 것이 아닌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것은 전혀 달랐다. 911의 타이어가 "끼이익"하는 소리를 내게 하려면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딜러분의 말에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기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911의 시승을 마치고 주차된 911 앞에 서니,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에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911을 단순하게 "차"라고 부르는 것은 왠지 실례가 되는 말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지금까지 알고 있던 "차"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꿔버린 것이다.
911은 그야말로 "감성" 그 자체였고
과속유발자, 폭주유발자, 칼치기유발자 였다. (난 "정속주행자"였단 말이다)
시승하는 차에 주눅이 들어서 제대로 시승을 하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도 있었다.
911을 겪고 나니 벤츠 E클래스가 얼마나 얌전한 차인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엔돌핀이 넘치는 상황에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음 시승할 박스터S의 시트에 앉았다. 사이드미러가 좀더 작아 보였지만 실제 운전 시에는 그다지 작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미러 조정과 시트 조정을 하고 소프트탑부터 열어버렸다. 로드스터는 오픈 에어링이 기본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탑을 열고 시승할 생각이었다. 박스터S의 엔진소리는 미친듯이 울어대던 911에 비하면 상당히 조용한 편이었다.
이미 911을 시승하면서 경험치를 쌓은 뒤라, 박스터는 좀더 과격한 드라이빙을 해보았다. 오픈 에어링의 상쾌함은 어느 새 잊혀져버리고, 손에 착 감기는 듯 원하는 대로 차가 휙휙 따라오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차를 운전하면서 "재미있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 나오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정말 내 스타일대로 휘둘러보았다. 두어번 정도 휘청거림이 있었는데 내가 지나치게 과격하게 운전을 해서 차가 직접 개입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마구 굴려도 전혀 문제없이 따라와주었다.
정말로 박스터는 ONLY 드라이빙 머신으로만 굴리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데일리 카에서나 필요한 화려하고 편리한 옵션보다는 드라이빙에 집중할 수 있는 옵션 위주로 세팅을 하여 오로지 "와인딩 머신"으로만 만드는 것이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주눅이 들어 제대로 시승을 하지 못했던 911에 비해서, 내 스타일대로 드라이빙을 하면서 시승을 한 탓에 딜러분도 내게는 박스터가 훨씬 맞는 것 같다는 총평을 해주었다.
다음에 시승 예정인 SLK는 어떤 스타일일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박스터가 내가 추구하고 원하는 스타일을 가진 훌륭한 로드스터임을 직접 확인한 상태이다. 박스터를 가격때문에 단순히 911의 엔트리 모델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추측일 뿐이다. (게다가 가격차이도 생각보다 많이 나지도 않는다!)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타느냐에 따라서 911이 맞을 수도 있고, 박스터나 카이맨이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주말용 로드스터로는 911보다는 박스터가 확실하게 들어 맞는다.
자, 이제 SLK를 느껴보러 가야겠다. 기다려라, AMG!